마인드

"죽음을 권하는 남자와 삶을 잃은 사람들"– 김영하 『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』 리뷰

욱’s 2025. 7. 1. 05:10

 

🧠 시작은 이렇게…

당신은 누군가에게 죽음을 '안내'받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?
극도로 내몰린 감정 끝에서, 누군가가 다가와 아주 조용히 묻습니다.
“이제 그만 두시겠어요?”

김영하의 『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』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합니다.
누군가는 이를 “자살 안내인”의 이야기라 하고, 또 누군가는 “존재의 해체를 선언한 자들의 기록”이라 말합니다.

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.
이는 살아남은 자들,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잔혹할 만큼 맑은 **“삶의 아이러니”**에 대한 이야기입니다.


📖 줄거리 속으로:

도시는 무심하게 흐르고,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조용히 사라집니다.
이야기는 이름 없는 **화자(자살 안내인)**를 통해 전개됩니다. 그는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듣고, 그들을 위로하지도 말리지도 않습니다. 단지 “삶을 그만두도록 돕는 것”이 그의 일입니다.

그의 기록 중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합니다.
세진 — 영상작가였지만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버린 채 허무를 헤맨 인물.
유주 — 쌍둥이 언니 유리의 삶을 대신 살아가며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여자.

화자는 이들을 관찰하며, 그들이 죽음이라는 경계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.
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건,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**“나로서 살아간다는 것”**의 실존적 고민입니다.


🧩 이야기의 비틀림:

독자는 자주 혼란스럽습니다. 이 사람이 누구인지, 이 장면이 현실인지 회상인지 구분되지 않습니다.
김영하는 의도적으로 시간과 공간, 시점의 선을 무너뜨립니다.
죽음과 삶, 예술과 무기력, 허무와 욕망의 경계가 지워지는 그 공간에서,
우리는 자꾸만 거울을 보게 됩니다.

"나는 왜 이 이야기에 끌리는가?"
"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?"


✍️ 작가의 목소리인가, 우리의 속삭임인가?

『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』는 1996년 당시 한국 문단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.
그리고 2025년인 지금, 그 파괴적인 제목과 문장은 여전히 유효합니다.
그 안에는 “예술은 어디까지 인간의 삶을 관통할 수 있는가?”
“인간은 자신을 파괴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?”에 대한 도발이 담겨 있죠.

작가는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.

“삶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은 사실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다.”

이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, 이 소설은 죽음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
**“다시 살아가기 위해 나를 이해하려는 소설”**이라는 사실에 다다르게 됩니다.


💬 독자 추천 포인트

✔ 철학적인 문장과 차가운 서술이 주는 묘한 중독성
✔ 인간 존재의 실존적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은 독자에게
✔ '죽음'이라는 주제를 다루지만 오히려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작품
✔ 짧지만 강력한 파괴력, 소설 이상의 에세이적 통찰
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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